여행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새로운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 등등이 여행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 낭만을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지천명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기차 여행, 특유의 비릿하고 짭짤한 냄새와 함께 했던 바다 여행들은 물론 겪어본 것이지만, 아직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고 아니 부족하다는 이유로 생겨나는 여러 제약 때문에 나 스스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누릴려고 자유롭게 결정하여 어디론가 훌쩍 떠나본 적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 년 중 두 달씩이나 방학이 주어지고, 주말마다의 산행이 이루어지며 주위 친지들로부터 방랑벽 또는 역마살이 낀 사람의 취급을 받는 저에게도 낭만적인 여행 기회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의 체험과 진솔한 이야기가 싱그러운 유월의 향기처럼 그대로 배어있는 여행기는 언제나 고맙게 느껴져서 가끔 독서를 하곤 합니다. 내가 직접 겪지는 못하지만, 여행을 다녀 온 그들이 겪은 사소한 일상들 속에, 새로이 만난 사람들 속에,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간접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행기를 읽다보면 항상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변 자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가는 그 어느 곳이라도 세상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살겨운 냄새가 배여 있기에 정겹고 낭만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한비야의 중국견문록』도 그러한 고마운 책입니다. 가깝지만 너무 먼 나라.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나라. 중국에서의 1년을 지은이는 너무나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지요.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오지를 찾아 여행한 체험들을 바탕으로 책을 펴낸 여행 작가이자, 국제 비정부기구 ‘월드비전’에서 난민구호를 위해 힘을 다하고 있는 한비야. 그녀와 정말 잘 어울리는 바람의 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지은이는 어떻게 보면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을 마흔 세살의 나이에 중국어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중국에 1년 유학을 가게 되지요. 세계의 오지를 찾아 떠난 긴 여행을 마치고 난 얼마 후였고 또다시 가족들과, 친구들과 오랫동안 떨어져있어야 했음은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중국으로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그녀는 정말로 가장 최소한의 짐을 꾸려 중국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여행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그곳에 대한 기대로 커다란 풍선만큼이나 부푼 마음을 가득 안고……. 그녀의 여행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끝이 납니다. 일 년 동안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목표를 실천으로 옮겨 냈을 뿐만 아니라, 13억 중국인의 삶 곳곳에 생명력 강한 나무처럼 뿌리 내리고, 자신의 더 큰 목표였던 난민구호활동에까지 참여한 그녀가 정말로 존경스럽게 느껴졌지요. 바람의 딸이 아름다운 것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 목표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정말로 진정한 뜻이 있는 목표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처: KBS 홈피에서 다운)
이번 겨울에는 몇 년 전 KBS를 통해 방영되어 감탄과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던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책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길, 벌써 낭만이라는 단어는 사치에 불과한 듯하지 않나요?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문명 교역로,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이 교역되었던 5,000km를 답사하고 촬영한 기록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지요. 나는 예전에 화면으로 차마고도 풍경을 보았을 때 그 경이로움에 감탄과 더불어 꼭 가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이제사 책으로 접했지요. 만년설로 덮힌 설산, 까마득한 절벽, 끝도 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가는 마방들. 언제인지 모를 그 옛날에 사람들이 그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걷고 그 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결국은 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차마고도가 삶의 전부인 마방과 소금밭 여인, 카라반, 순례자......그들의 작지만 위대한 삶을 언젠가 느껴보고 싶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높은 길을 오체투지는 하지는 못하더라도 문명의 이기를 빌어서 한번 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세상,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진솔하고 위대한 삶의 의미와 행복이 가득 담긴 그런 어떤 낭만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영국의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 (A.L.Huxley) 가 미래의 세계를 그린『멋진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국민은 먹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소마(soma)라는 알약을 제공받습니다. 여러분들도 떠나기만 하면 낭만을 느낄 수 있고 행복해지는 그런 여행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2012. 2월의 어느 날 난담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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