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詩1
희망에게 -이해인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 때 깍아먹는
한조각 무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꿈을 찾아줍니다
다정한 눈길을 주지못한 일상에
새옷을 입혀준 입혀줍니다
남이 내게 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차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으므로
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2월의 시 -함영숙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꿈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 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사래 떤다.
2월 -김용택
방을 바꿨다
한 개의 산봉우리는 내 눈에 차고
그 산봉우리와 이어진 산은 어깨만 보인다.
강과 강 건너 마을이 사라진 대신
사람이 살지 않은 낡은 농가가 코앞에 엎드려 있다.
텅 빈 헛간과 외양간, 분명하게 금이 간 슬레이트 지붕,
봄이 오지 않은 시멘트 마당에
탱자나무 감나뭄 밤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뒤엉킨다.
짊어지고 뛰어다닌다.
방을 바꿨다.
방을 바꾼다고 금세 삶이 바뀌지 않듯
풍경이 바꾸니다고 생각이 금방 달라지진 않는다.
눈에 익은 것들이 검점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것들이 어디서 본 듯 나를 새로 보리라.
날이 흐려진다.
비 아니면 눈이 오겠지만
아직은 비도 눈으로 바뀔 때, 봄이 아직 멀었다.
노란 잔디 위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계절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늘 햇살을 한 짐 씩
나는 어제의 방과 이별을 하고
다른 방에 앉아
이것저것 다른 풍경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나도 이제 낡고 싶고 늙고 싶다.
덤덤하게, 그러나 지금 나는 조금은 애틋하게도, 쓸쓸하게
새 방에 앉아 있다.
산동백이 피는지 문득, 저쪽 산 한쪽이 환하다. 아푸튼, 아직 봄이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