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와 글들

12월의 시 2

아주나09 2021. 12. 13. 18:41

한 겨울에 동백꽃 떨어지니 .......

촛불 켜는 밤 - 이해인

 

12월 밤에 조용히 커튼을 드리우고

촛불을 켠다.

촛불 속으로 흐르는 음악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 가고 있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의 수없는 얼굴들을 그려본다.

내가 사랑하는 마루나무를, 민들레 씨를,

강, 호수, 바다, 구름, 별,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본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겨울에 피는 한란

겨울에 피는 이유가 있겠지요.

도움의 손길 한 번 주지 못하고 산 나를 비웃는 건 아닌지...

 

12월의 시 - 은교

 

잔별 서넛 데리고

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처마끝마다 매달린

천근의 어굼을 보라

어둠이 길을 무너뜨린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일년의 그림자도 지워버리고

그림자 슬피 우는 마을 마저 덮어 버린다

거기엔

아직 어린 새벽이 있으리라

어둠의 딸인 새벽과

그것의 젊은 어머니인

아침이

거기엔

아직 눈매 날까로운

한때의 바람도 있으리라

얼음 서걱이는 가슴 깊이

감춰둔 깃폭을 수업이 펼치고 있는

바람의 형제들

떠날 때를 기다려

달빛 푸른 옷을 갈아 입으며

맨몸들 부딪고

그대의 두 손을 펴라

싸움은 끝났으니, 이제 그대의 핏발선 눈

어둠에 누워 보이지 않으니

흐르는 강물소리로

어둠의 노래로

그대의 귀를 적시라

마지막 촛불을 켜듯

잔별 서넛 밝히며

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그림자를 거두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