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와 글들

사평 역에서

아주나09 2006. 12. 21. 15:43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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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의 상대는 사람만이 아니다.

책과 씨름한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씨름 상대는 사람과 책이다.

70년대 후반 고딩시절 난 책과 씨름을 했다.

여기까지 읽다보면 엄청 공부를 했겠구나!

대답은 노다. 난 도서실에서 문학책과 씨름을 했다.

문학사상, 창비 등등의 월간지,계간지 등등 문학과 관련된 책들은 돈들이지 않고 읽었다.

문학 작품속의 주인공이 되기는 너무 쉬웠고, 심지어 소설을  통해 신춘문예 당선의 꿈도....

80년대 초인가 보다. 사평역이란 시를 신문인가? 월간지인가?에서 만났다.

아스라히 기억속에 잠겨 있던 나의 유년의 모습을 거기서 보았다.

내리는 송이눈처럼 뿔뿔히 흩어진 식구들.

아! 형아는 언제오나?  무엇을 갖고 올까?

서울로 간 형을 기다리느라 사평역 아니 봉화역에서 마지막 밤열차를 기다리던 나의 모습.

봉화역 모습이 사평역이었다.

한 번 가보시라....